‘멈추어라 그러면 내가 보일 것이다.’
5년 전 봄, 안식월을 맞이해 한국의 깊은 산속에 위치한 영성센터에서 한 달간 기도를 했다. 캐나다 구엘프에서 40일간 침묵기도를 한 적이 있지만 한국은 처음이었다. 모두 한국사람이라 언어가 참 편했다.
경치 좋은 깊은 산속에서 매일 맛나는 한국음식을 즐기며 기도를 하니
마치 고향집에 온 것 같았다. 시간은 단순하고 느리게 흘렀다. 침묵기도 한 달간 철저히 외부세계와 단절됐다.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산책하고, 그리고 밥을 먹었다.
세 가지를 반복하다 어두워지면 잠이 들었다.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그렇게 한 달을 보냈다. 처음 일주일은 무척 힘들었다. 마치
100km/h로 달리다 갑자기 10km/h로 걷는 답답함이 이어졌다. 사람과 세상에 대한
'뿌리 깊은 그리움'이 밤마다 몸부림쳤다.
그런데 한 주가 지나자 몸과 마음이 서서히 느린 속도에 맞춰지기
시작했다. 모든 행위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받아들여졌다. 양치질 할 땐 양치질만 하고, 기도시간엔 기도만 하고,
식사 중에는 밥만 맛있게 먹었다. 산 속을 걸으면 나무와 작은 새, 이름 모를 풀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든 행동이 행동 그
자체로 인식되고, 음미되고, 무엇을 위한 준비행동이 없어졌다.
밥을 먹기 위해 양치질하지 않았고, 기도하기 위해 밥을 먹지 않았다. 다음 동작을 위해 현재의 동작을 하는 것이 차츰 사라지기 시작했다. 오직 남은 것은 지금 내가 하는 동작,
당장 내 손에 잡힌 그 일만 남아 있었다.
그러다 나의 소박하고 단순한 이 순간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났다. 단순하고 고립된 작은 세계에 안거(安居) 했다. 희망 없이 안주(安住) 하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발견된 희망 속에 편안히 머물기 시작했다.
그때 마음으로 받은 말씀이 시편
46편 10절 말씀이다. "너희는 멈추고 내가 하나님인 줄 알아라(Be still and know that I am
God)" 주님은 나의 영혼을 향해
말씀하셨다. “영민아, 멈추어라. 그러면 내가 보일 것이다.”지금도 종종 그때 받은 말씀을 생각하게 된다. 특히 삶의 속도가 빠르다고
느껴질 때, 이 말씀을 의도적으로 기억하려 노력한다.
코로나 사태로 삶의 속도가 그 이전보다 훨씬 늦춰지고 있다. 행동반경이 좁아졌고,
약속도 많이 줄었다. 힘든 시간이지만,
어쩌면 이것이 인류에게, 자연에게, '안식년 같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어차피 받은 안식년, 유용하게 쓰여지길 바란다.
인생의 속도를 줄이고, 삶을 성찰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삶의 속도가 너무 빠르면, 무엇엔가 쫓기는 삶을 살게 된다. 무엇엔가 눌리기도 한다.
이번 기회에 눌리는 삶이 '누리는 삶'으로, 쫓기는 삶이 '부름 받은 삶'으로 바뀌면 좋겠다.
오늘도 내 귀엔 그 때 들었던 그 분의 음성이 맴돈다.
"멈추어라 그러면
내가 보일 것이다."
2020년 5월 31일 고영민 목사
(위의 글은 캐나다 한국일보의 요청으로 5월 27일자 신문에 게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