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크기가 삶의 크기입니다
위니펙이 고향인 곰돌이 위니더푸(Winie-the-Pooh)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산책을 하다가 푸의 친구 피글렛(piglet)이 푸에게
묻습니다.
“너는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말이 무엇이니?”
“오늘 아침을
뭘 먹을까?” (What's for breakfast?)
이번에는 푸가 피글렛에게 묻습니다.
“그럼 너는?”
“오늘은 어떤
신나는 일이 생길까?” (I say, I wonder what's going to happen
exciting today.)
그러자 푸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합니다.
“같은 거네.”(It's
the same thing.)
‘오늘 아침은 뭘 먹을까?’
‘오늘은 어떤 흥분되는 일이 있을까?’ 같은
것일까요? 결코 같지 않습니다. 하루의
꿈이 아침식사(breakfast)인 것과 흥분되는 일(excitement)인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꿈의 크기가 삶의 크기이다.” 너무
많이 들어서 식상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 하는 꼰대 같은 소리처럼 들릴 수 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은 진실입니다. 인생은 꿈처럼
되고, 꿈꾼 만큼 됩니다. 꿈
보다 크게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꿈을 꾸어야 합니다. 꿈을 꾸는
데는 나이 제한이 없습니다. 미국의 메리
로버트슨이라는 할머니는 78세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가 그린 그림을 동네 가게에 걸어 놓았는데,
지나가던 미술품 수집가가 보고 너무 좋아서 뉴욕 미술계에 소개하게 되었고,
그래서 전문 화가의 삶을 살았습니다. 너무
열심히 그림을 그리다가 그만 오른손에 심한 관절염이 왔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포기하지 않고, 왼손으로 열심히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래서 돌아가시기 직전 100세까지 화가로
활동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끝까지 꿈을 꾸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꿈을 꾸시기를 바랍니다. 꿈은 인생의
날개입니다. 꿈을 접는 순간과 삶도 접힙니다.
다시 꿈꾸면서 힘차게 날아오르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020년 8월
2일 고영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