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로워지자!'
한국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포함해서 4개의 상을 받았다. 92년 역사의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어가 아닌 언어로 된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것이
이번이 최초이다. 한국 영화 사상, 아니 인류 영화
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지난 주 화요일 저녁 교역자들과 함께 쏜힐의 극장에서 보면서 참 뿌듯했다. 맨 앞자리까지 캐나다의 다양한 민족들이 극장을 가득채웠는데, 그들이 볼 영화가 한국영화였고, 그들은 자막을 보고, 나는 자막을 보지 않고 맛깔나는 한국어를 여유있게 2시간 12분 동안 즐겼다.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는 이 영화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경제적 양극화 현상에 대한 실랄한 비판이라고 한다. 이런 거대 담론에 대해서는 한정된 지면에 다 담을 수 없어서, 잠시 접어두고자 한다. 대신에 영화를 하나의 텍스트로 놓고서 묵상을 한 ‘영화 QT’ 느낌으로, Letio Divina를 영화로 하는 ‘Lectio Cinema’ 느낌으로 내 감상을 잠시 나누려고 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 전체적인 내 느낌은 ‘불편함’이었다. 기분이 별로였다. 나를 포함하여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같은 느낌이었다고 하는데, 감독은 바로 이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니, 어쨌든 메시지 전달에 성공한 셈이다.
그런데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지금은 1층에 살지만 곧 반지하로 내려올 젊은 피자집 사장, 그리고 1층에서 반지하에 내려온 기택이네 그리고 1층에서 반지하로 그리고 지하로 내려온 문광과 그녀의 남편, 이들의 갈등이다. 젊은 피자집 사장은 자기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충숙에게 서슴없이 반말을 한다. 그리고 기택이네 사람들과 문광이네 사람들은 서로를 죽여야만 하고, 실제로 죽인다. 이들에게 서로에 대한 연민 그리고 약자간의 연대는 없다. 연민도 연대도 못하게 만드는 무자비한 현실이 안타깝다. 그리고 가슴 아프게도 피자집 젊은 사장에게서 나를 보았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자비로워지자. 자비로워지자. 내 주위에 한 없이 늘어만 가는 반지하의 사람들을 향해서 한 없이 자비로워지자. 나도 그들인데.
P.S.기생충의 최대 수혜자인 CJ와 봉준호 감독에게 하고 싶은 말: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영화로 보여주어서 고맙다. 반지하 사람들 덕분에 성공을 거두었으니,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면 어떨까? 흥행수익의 절반을 뚝잘라서, 반지하에서 절망하고 있는 수 많은 기우 그리고 기정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에 쓰면 어떨까? 이것이 남의 위선은 확 벗겨놓고서 자신은 또 다른 위선 속으로 숨지 않는 길이 아닐까?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 (마태복음 12:7)
2020년 2월 16일 고영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