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위서 12년째 사역 중
김용진 선교사
열악한 교도소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어린이들에게 급식을 한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가지 일이 밀접하게 연관된 곳이 있다. 아프리카 말라위 남부의 마칸디교도소다. 이 교도소 안에는 다른 교도소에는 없는 시설이 있다. 농장과 공장이다. 농장에는 콩과 옥수수가 자라고, 공장에는 제분기와 배합기 설비가 움직인다. 공장 노동자들은 모두 지역 교도소에서 선발된 재소자들이다. 이들은 수확된 콩을 1시간가량 볶아 설탕과 옥수수를 제분기에 넣고 돌린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루에 비타민과 철분 영양소 농축액을 첨가하면 맛난 영양식이 탄생한다. 이름하여 ‘치콘디 팔라’. 한국말로 직역하면 ‘사랑죽’이다. 이 사랑죽이 말라위의 35개 유아원과 5개 초등학교로 배달된다. 매일 2만5000명의 어린이들이 사랑의 죽으로 배고픔을 채우는 것이다. 비용은 한 끼당 30원. 연중 200일을 아이들이 먹고 있으니 1년이면 대략 1억5000만원의 비용이 든다. 말라위 현지에서 12년째 사역 중인 김용진(58·아프리카사랑재단 본부장) 선교사가 하는 일이다. 지난 2일 국민일보 빌딩에서 만난 김 선교사는 아프리카의 교도소 얘기부터 꺼냈다.
베푸는 삶 가르치는 교도소
“교도소는 어느 나라든 사회의 밑바닥 생활을 반영합니다. 인권의 사각지대로 불릴 만큼 비참한 상태입니다.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의 35개국 주민들은 하루 1달러 이하로 생활할 만큼 가난하게 살아갑니다. 교도소는 이런 현실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25㎡(8평) 정도 공간에 50여명의 수감자들이 생활합니다. 쪼그려 앉아 15시간 이상을 견뎌야 하고 서로 머리와 다리를 베고 겹쳐 누워 지냅니다. 하루 한 끼밖에 먹을 수 없고 전염병이 돌면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곳이죠.”
김 선교사는 1989년 미국 텍사스주립대에서 범죄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이후 펜실베이니아주립대와 한국 한동대 등에서 교수를 지냈다. 기독교 사회과학자로서 범죄를 예방하고 공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게 일생의 과업이었다. 특히 범죄 사례를 연구해 성경적 형사정책을 마련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필라델피아)에서 신학(M.Div.)을 공부한 것도 그런 이유다.
그는 2002년 미국 프리즌펠로십(국제교도소선교회)의 전략사업본부장을 맡고 있었다. 당시 아프리카의 교도소 실태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큰 충격을 받았다. 수감자들이 개나 돼지보다도 못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넬슨만델라재단에서도 아프리카 교도소를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그때 김 선교사는 교도소 과밀도 해소와 성경적 교정(矯正)을 위한 사업으로 지금의 ‘치콘디 팔라’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김 선교사는 그해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된 세계교도소선교지도자대회에 참석해 아프리카 대표들과 만나 사업 실효성을 따져보기도 했다.
현재 김 선교사가 지내고 있는 마칸디교도소는 형기를 1∼2년 남긴 재소자들이 모인 곳이다. 출소에 앞서 농업기술과 자동차 정비 등을 배우며 사회 복귀를 준비한다. 이곳에서는 주는 것을 가르친다. 남의 물건을 훔치고 빼앗던 삶에서 주고 베푸는 삶의 중요성을 교육한다. ‘사랑죽’을 만드는 일은 이타적 삶을 경험하는 핵심 프로그램이다.
마칸디교도소 교육 철학의 근간은 성경이다. 교도소 곳곳에 말씀이 붙어 있다. “도둑질하는 사람은 다시는 도둑질하지 말고 수고를 하여 제 손으로 떳떳하게 벌이를 하십시오. 그리하여 오히려 궁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 있게 하십시오.”(새번역 에베소서 4장 28절)
김 선교사는 교도소 전체를 예배와 말씀이 살아있는 곳으로 만들었다. 재소자들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 5시면 예배를 드린다. 예배 때마다 에베소서 4장 말씀을 읽으며 남을 위한 삶, 주는 인생을 결심한다. 주일 예배에서도 실천적 삶을 강조한다. 사랑죽을 만드는 의미에 대해서도 가르친다.
마이너스 삶에서 플러스 인생으로
에베소서 본문을 강조하는 것은 김 선교사의 확고한 교정 철학 때문이다. “일반적인 교정 목적은 재범 방지입니다. 하지만 이는 성경적 접근이 아닙니다. 성경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것을 넘어 그 이후를 언급합니다. 우리 믿음이 칭의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성화까지 가야 하는 것처럼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만큼 타인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마이너스로 살았다면 플러스 인생으로 살아야 되겠지요.”
그는 진리에 기초한 프로그램이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성공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다행히 12년간의 노력에 열매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부족의 추장을 비롯해 지역사회에서 칭찬하는 말이 들린다. 오는 7월이면 중부 카승구교도소에 제2 공장이 설립된다. 인접 국가들에서도 이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조만간 다른 나라 교도소에도 치콘디 팔라 프로젝트가 이식된다.
김 선교사는 출소자들을 시내에서 종종 만난다고 한다. 그들은 ‘독터 킴’ 하며 반가움을 표시한다. 김 선교사는 이들이 변화됐다는 소식을 듣는 게 가장 행복하다. 좁아터진 교도소 환경도 일부 해소됐다. 출소를 앞둔 재소자들이 마칸디교도소로 옮겨가면서 약간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가장 큰 열매는 배고픈 아이들이 먹을 수 있게 된 일이다. 김 선교사에 따르면 그동안 말라위 어린이 30∼40%가 학교에 오지 못했는데 이는 먹을 게 없어서였다. 먼 거리를 걸어 등교해야 하는 아이들은 주린 배로는 갈 수가 없었다. 여학생의 경우 10세가 넘으면 가사일을 도와야 하기 때문에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 그런데 이젠 학교에 가면 영양식을 먹을 수 있게 됐으니 집에서도 학교에 가라고 등을 떠밀게 됐다.
학교에서는 급식만 하는 게 아니다. 기독교 교육으로 아이들을 양육한다. 말라위는 인구 80%가 기독교인이다. 크리스천 교사들을 통해 복음에 입각한 인성교육을 실시한다. 김 선교사는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교육은 너무 중요하다. 받기만 하고 쓰기만 해온 이 사람들에게 남을 위한 삶, 배려하는 삶을 가르치는 것”이라며 “교육은 아프리카에 만연된 노예적 근성의 고리를 끊는 강력한 도구”라고 말했다.
김 선교사에게 급식 프로그램은 장점이 많다. 배고픈 아이들도 먹이고 교육도 받게 할 수 있어서다. 이른바 ‘1대 1 결연’과는 또 다른 차원이다. 결연이 ‘선발된’ 아이들에게 집중하는 것이라면 급식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그리고 많은 아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했다.
기독교 사회과학자이자 현장 선교사로서 그는 ‘1대 1 결연’과 관련해 불편한 심정도 내비쳤다. “현장에서 보면 결연이 안 된 아이들은 몹시 부러워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500명 결연아동이 물품을 받는 현장 주위에는 비결연 아동과 가족들 1500명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선한 의도, 비참한 결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심각해야 생각해야 합니다.”
관심이 아프리카 변화시켜
김 선교사는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재단 상임이사인 김경래(86) 장로의 장남이기도 하다. 그는 부친에게서 타인의 유익을 위해 사는 삶이 진정한 크리스천이라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한때 김 장로가 ‘유산안물려주기운동’을 펼칠 때 김 선교사는 ‘유산 줘도 안 받기 운동’을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정말 유순한 사람들입니다. 순박하고 정이 많습니다. 아프리카인 대부분이 그렇지만 그들 집에는 자기 가족만 살지 않습니다. 친척 아이들을 데리고 사는 가정이 많습니다.” 서구 노예제를 정당화시킨 노아의 저주(창 9)에 대한 왜곡된 성경 해석을 사죄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서구 문명의 발달에는 노예들의 채찍 자국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노예제도의 결과가 지금 아프리카의 현실입니다. 애국심이나 소속감이 없고 비리에 만연된 근본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어린이들을 먹이고 가르치는 일은 중요합니다. 한국의 독지가들이 나서 주십시오. 우리의 작은 관심이 아프리카를 변화시킬 것입니다.”